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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거래 앱에서 장만한 오늘의 식탁

by 남매와 성장하는 엄마 2025. 4. 18.

“조리도구부터 밥솥까지” 중고로 채운 주방

중고 거래 앱에서 장만한 오늘의 식탁
중고 거래 앱에서 장만한 오늘의 식탁


중고로만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공간 중 하나인 주방을 다시 채워야 했다. 오늘은 중고 거래 앱에서 장만한 오늘의 식탁에 대해서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기간을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하는 삶’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집을 둘러보니 없는 게 너무 많았다.
후라이팬, 냄비, 전기밥솥, 접시, 그릇, 젓가락, 컵…
예전엔 당연하듯 하나하나 새로 샀던 물건들인데, 이번엔 모두 중고 앱을 통해 구했다. 당근마켓과 번개장터가 주된 쇼핑 공간이었고, 종종 맘카페 나눔 게시판도 살폈다.

가장 먼저 장만한 건 전기밥솥이었다. 한 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3인용 미니 밥솥을 운 좋게 저렴하게 구했고, 상태는 거의 새것. 이후엔 중고로 나온 스테인리스 냄비 2종 세트, 원목 손잡이 후라이팬, 그리고 마치 영화 소품처럼 생긴 도자기 접시도 하나하나 모았다. 컵과 수저는 어떤 분이 “혼자 사는 분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나눔해준 것. 덕분에 주방은 점점 나만의 색으로 채워졌다.

흥미로운 건, 물건 하나하나에 이전 주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접시는 여행 가서 산 건데, 잘 안 쓰게 되네요”, “이 냄비는 결혼 때 혼수로 들어온 거예요” 같은 말들과 함께 받은 물건들. 그것들을 손에 들고, 씻고, 정리하면서 나는 ‘이제 이 물건들이 내 일상을 채울 차례구나’라는 책임감 같은 걸 느꼈다.

 

중고 조리도구로 만든 오늘의 한 끼


오늘의 메뉴는 버터 간장계란밥 + 감자채볶음 + 시래기 된장국.
재료는 대부분 당근마켓에서 나눔받거나 저렴하게 구매한 것들이고, 조리도구는 모두 중고 거래로 장만한 것들이다.

버터 간장계란밥
전기밥솥에 갓 지은 따끈한 쌀밥 한 공기

가운데에 반숙 프라이드 에그 하나

간장 한 스푼, 버터 작은 조각

고소하게 비벼서, 김가루 살짝

이건 정말 재료도 간단하고 실패 없는 메뉴다. 중고 밥솥으로도 쌀만 잘 씻어 넣으면, 갓 지은 밥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프라이팬에 계란을 지글지글 굽고, 버터를 살짝 얹으면 입안에 퍼지는 풍미가 최고다.

감자채볶음
감자 1개 얇게 채 썰기

기름에 살짝 볶다가, 소금과 다진 마늘

마지막에 약간의 깨소금

감자는 어느 동네 아주머니가 “창고 정리하다가 나온 건데 괜찮아요~” 하며 건네준 것. 전용 감자칼도 없고 칼도 중고라 날이 살짝 무뎠지만, 오히려 덜 얇게 썰어진 감자가 씹는 맛이 살아 있었다.

시래기 된장국
냉장고가 없기에 그날그날 요리해야 했던 국

시래기는 말려 놓은 걸 물에 불려 사용

멸치 육수에 된장 풀고, 두부, 양파, 시래기 넣고 푹 끓이기

이 된장도 어떤 분이 “어머니가 직접 담그신 건데, 저흰 잘 안 먹게 돼서요” 하고 주신 것이었다. 뚜껑 열자마자 고소한 된장 향이 퍼졌고, 시래기와 멸치의 조합은 국물 하나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만들었다.

 

감성은 예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중고로 구해 만든 식탁.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살아야 해?"라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식탁 앞에서 예상치 못한 감성을 느꼈다.

평범한 밥과 반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식사지만,
그걸 만든 조리도구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있고,
그 재료들이 누군가의 손에서 내게로 온 것임을 생각하니
이 한 끼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연결의 결과물이었다.

특히 오늘 밥 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한 끼 안에 몇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을까?
밥솥을 판 그 사람, 감자를 나눠준 분, 된장을 담가주신 어머니…
그리고 나, 지금 이걸 감사히 먹고 있는 사람.

식탁 위의 물건은 다 중고였지만,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감정을 발견했다.
그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중고 물건으로 만든 한 끼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고,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감성은 새것에서 온다’고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 중고 접시에 담긴 계란밥에서 더 큰 감동을 느꼈다.

다음 글에서는 중고 냉장고를 드디어 들이게 된 날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새 물건보다 더 반가웠던 중고 냉장고 한 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도 많다.
기대해도 좋다 :)